이쿠노 딕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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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한 내용은 이쿠노 딕터스(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문서 참고하십시오.
일본의 경주마.
외조모 나이스 랜딩의 모계 3대 손으로 2010년 천황상 봄 우승마 재규어 메일(ジャガーメイル)이 있다.
총 51전 9승. 중상은 G3만 4승, G2 이상은 우승 없음. 하지만 단순한 G3마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저력을 갖추고 있었던 말로 93년 봄의 야스다 기념과 타카라즈카 기념 2연속 2착은 이 말이 G1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음[3] 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암말 통산 상금 역대 1위는 단순히 많이 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4] , 굳이 따지면 실력 대비 지지리도 승운이 없었다고 봐야 할 듯.
이렇게 적은 승수에도 불구하고 51전이라는 통산 전적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제정신이 아니다 싶은 출주 스케줄과 그걸 멀쩡하게 다 소화해내면서도 어느 정도 성적도 거두고 고장도 안 났던 그 터프함 때문에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5][6][7] 사실 출주를 많이 한다고 유명한 말들은 거의 전부 단순히 출주를 못 시키면 말고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출주 수당이라도 벌어와서 사료값이라도 하려고 계속 출주를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애초에 따로 훈련이나 조정같은 것도 없이 그냥 레이스에 출장하고, 승리는 처음부터 기대도 안하고(물론 딸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따러 가겠지만) 안전 최우선으로 경주를 하며, 거리도 마일 미만으로 상대적으로 짧기에[8] 그런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것인데, 멀쩡하게 중앙 경마에서 중거리 중상 승리를 노리면서 51전이나 뛰었고, 그렇게 뛰면서도 중상 4승을 챙기고, G1 2착을 두번이나 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 것이다. 반대로 이런 스케줄에서도 저런 저력을 보였는데 더 관리받으면서 적은 수의 대회에 집중해서 뛰었다면 더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기록이 92년도인데, 2월 2일 칸몬쿄 스테이크스를 시작으로 시즌 스타트 후 1년 내도록 쉬지않고 달려 12월 27일 아리마 기념까지 단 한 달도 쉬는 달 없이 매달 1, 2회씩의 출주로 11개월 동안 총 16회의 출주를 했다. 게다가 저 기록이 말고기 되기 싫으면 출주 수당 받아오라고 보낸 것도 아니고 이기라고 내보낸 경주들이라, 저 막장 스케줄 가운데서도 특히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오픈 1승, G3 3승, G2 2착 한번으로 펄펄 날아다니며 여름 여자[9]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건지 93년도에는 전반기에는 자잘한 오픈, G3는 전부 패스하고 G2와 G1에만 집중하였고 G1 2착 2회 역시 이때 나온 성적. TV아이치 오픈에서 1승을 추가하고 여름에는 휴식에 들어갔으나 이후 복귀한 가을에는 완전히 기력이 쇠퇴하여 올커머 G3 7착을 시작으로 마이니치 왕관 G2 7착, 가을 천황상 G1 10착, 후지 스테이크스 OP 8착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철의 여인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말이지만, 실제론 데뷔 직전에 굴건염이 발생했는데 안락사를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말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진영에서는 "골절만 아니라면 장제(편자 관리)를 통해서 어떻게든 고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하던 장제사 후쿠나가 마모루(福永守)에게 치료를 맡겼고 후쿠나가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내며 완치에 성공해 데뷔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라는 에피소드가 은근히 널리 알려져있는데....... 사실 위 내용은 슈에이에서 출간된 "우준들의 발자국"이라는 만화책의 내용으로 실화가 아니다.
후쿠나가 마모루 장제사가 평소에 "골절과 건파열만 아니라면 어떤 다리 고장이라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할 정도로 말의 다리에 관해서는 탁월한 전문가였던 것은 맞고, 일본 위키피디아의 후쿠나가 마모루 항목에 이쿠노 딕터스가 걸려있는 것도 맞지만, 막상 이쿠노 딕터스가 후쿠나가 마모루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다른 증거 자료가 없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이쿠노 딕터스가 치료받았다는 자료의 출전이 "우준들의 발자국"으로 되어있고, 니코니코 대백과에서는 진위가 불명이라고 되어있는 상황이다.[10]
여담이지만, 후쿠나가 마모루는 이쿠노 딕터스 외에도 하기노 톱 레이디(오우카상, 엘리자베스 여왕배, 타카마츠미야 기념등을 우승한 암말이자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라이벌로 유명했던 다이이치 루비의 어미. 번식마 은퇴 후 다리 상태가 나빠지면서 안락사가 검토되었으나 후쿠나가가 인수 후 치료하여 천수를 누렸다.), 세리 세크레터리(거친 기성과 각부 불안으로 미승리 은퇴의 길을 걸을 뻔했지만, 역시 후쿠나가가 인수하여 치료 후 지방 경마로 데뷔. 파죽의 16연승을 포함하여 총 17승을 거뒀다. 다만 경주의 급이 너무 떨어져서 기록의 의미는 크게 없다.) 등의 말들을 치료한 전설적인 장제사다.
이쿠노 딕터스의 자마 성적은 좋지 않다. 현역 때 뛰어났던 암말은 자식이 뛰어난 경우가 없다는 옛 속설의 전형적인 사례.[14]
은퇴 후의 재밌는 일화는 첫번째 교배상대였던 메지로 맥퀸과의 이야기. 93년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후 인터뷰에서 기수였던 타케 유타카가 "맥퀸이 이쿠노에게 신경쓰느라 전혀 진지하게 달리지 않았다."라는 쉽게 말해 진지하게 달리지도 않았지만 우승할 정도로 널널했다는 자뻑 발언을 했는데, 이게 사람들한테는 로맨스로 받아들여졌던 것, 맥퀸과 같이 나온 경기에선 이쿠노 딕터스도 유달리 얌전했다느니 하는 핑크빛 소문이 관계자들 사이에도 퍼질 정도로 달아올랐는데[15] 결국 94년 이쿠노 딕터스와 메지로 맥퀸이 종마 생활을 시작하는 첫해에 맺어지게 되니 팬들이 열광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쉽게도 둘 사이의 자식은 별 성적을 내지 못한다. 그런데 꼭 이쿠노 딕터스의 탓이라 하기도 뭣한 것이 메지로 맥퀸 역시 자마 성적은 현역 경주마 시절 대활약에 비해 영 아니었고, 모부(외조부)로서 오르페브르와 골드 십, 드림 저니를 배출한 것이 다이다.
자마 중 야와타 버그는 한국으로 수출되었다.
이렇듯이 자마 성적은 썩 좋지 못했으나 모마로서 모성애가 무척 강해서 5번째 자마를 출산했을 당시 망아지가 젖을 좀 더 수월하게 먹을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눕는 등 배려했다거나 어느 정도 자마가 성장하자 방임하는 듯 했지만 인간에게 자마가 다가가자 혹여 데려갈까봐 몸으로 감싸는 등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고 한다.
[각주]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2. 혈통[편집]
외조모 나이스 랜딩의 모계 3대 손으로 2010년 천황상 봄 우승마 재규어 메일(ジャガーメイル)이 있다.
3. 생애[편집]
총 51전 9승. 중상은 G3만 4승, G2 이상은 우승 없음. 하지만 단순한 G3마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저력을 갖추고 있었던 말로 93년 봄의 야스다 기념과 타카라즈카 기념 2연속 2착은 이 말이 G1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음[3] 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암말 통산 상금 역대 1위는 단순히 많이 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4] , 굳이 따지면 실력 대비 지지리도 승운이 없었다고 봐야 할 듯.
3.1. 철의 여인[편집]
이렇게 적은 승수에도 불구하고 51전이라는 통산 전적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제정신이 아니다 싶은 출주 스케줄과 그걸 멀쩡하게 다 소화해내면서도 어느 정도 성적도 거두고 고장도 안 났던 그 터프함 때문에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5][6][7] 사실 출주를 많이 한다고 유명한 말들은 거의 전부 단순히 출주를 못 시키면 말고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출주 수당이라도 벌어와서 사료값이라도 하려고 계속 출주를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애초에 따로 훈련이나 조정같은 것도 없이 그냥 레이스에 출장하고, 승리는 처음부터 기대도 안하고(물론 딸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따러 가겠지만) 안전 최우선으로 경주를 하며, 거리도 마일 미만으로 상대적으로 짧기에[8] 그런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것인데, 멀쩡하게 중앙 경마에서 중거리 중상 승리를 노리면서 51전이나 뛰었고, 그렇게 뛰면서도 중상 4승을 챙기고, G1 2착을 두번이나 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 것이다. 반대로 이런 스케줄에서도 저런 저력을 보였는데 더 관리받으면서 적은 수의 대회에 집중해서 뛰었다면 더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기록이 92년도인데, 2월 2일 칸몬쿄 스테이크스를 시작으로 시즌 스타트 후 1년 내도록 쉬지않고 달려 12월 27일 아리마 기념까지 단 한 달도 쉬는 달 없이 매달 1, 2회씩의 출주로 11개월 동안 총 16회의 출주를 했다. 게다가 저 기록이 말고기 되기 싫으면 출주 수당 받아오라고 보낸 것도 아니고 이기라고 내보낸 경주들이라, 저 막장 스케줄 가운데서도 특히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오픈 1승, G3 3승, G2 2착 한번으로 펄펄 날아다니며 여름 여자[9]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건지 93년도에는 전반기에는 자잘한 오픈, G3는 전부 패스하고 G2와 G1에만 집중하였고 G1 2착 2회 역시 이때 나온 성적. TV아이치 오픈에서 1승을 추가하고 여름에는 휴식에 들어갔으나 이후 복귀한 가을에는 완전히 기력이 쇠퇴하여 올커머 G3 7착을 시작으로 마이니치 왕관 G2 7착, 가을 천황상 G1 10착, 후지 스테이크스 OP 8착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철의 여인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말이지만, 실제론 데뷔 직전에 굴건염이 발생했는데 안락사를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말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진영에서는 "골절만 아니라면 장제(편자 관리)를 통해서 어떻게든 고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하던 장제사 후쿠나가 마모루(福永守)에게 치료를 맡겼고 후쿠나가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내며 완치에 성공해 데뷔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라는 에피소드가 은근히 널리 알려져있는데....... 사실 위 내용은 슈에이에서 출간된 "우준들의 발자국"이라는 만화책의 내용으로 실화가 아니다.
후쿠나가 마모루 장제사가 평소에 "골절과 건파열만 아니라면 어떤 다리 고장이라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할 정도로 말의 다리에 관해서는 탁월한 전문가였던 것은 맞고, 일본 위키피디아의 후쿠나가 마모루 항목에 이쿠노 딕터스가 걸려있는 것도 맞지만, 막상 이쿠노 딕터스가 후쿠나가 마모루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다른 증거 자료가 없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이쿠노 딕터스가 치료받았다는 자료의 출전이 "우준들의 발자국"으로 되어있고, 니코니코 대백과에서는 진위가 불명이라고 되어있는 상황이다.[10]
여담이지만, 후쿠나가 마모루는 이쿠노 딕터스 외에도 하기노 톱 레이디(오우카상, 엘리자베스 여왕배, 타카마츠미야 기념등을 우승한 암말이자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라이벌로 유명했던 다이이치 루비의 어미. 번식마 은퇴 후 다리 상태가 나빠지면서 안락사가 검토되었으나 후쿠나가가 인수 후 치료하여 천수를 누렸다.), 세리 세크레터리(거친 기성과 각부 불안으로 미승리 은퇴의 길을 걸을 뻔했지만, 역시 후쿠나가가 인수하여 치료 후 지방 경마로 데뷔. 파죽의 16연승을 포함하여 총 17승을 거뒀다. 다만 경주의 급이 너무 떨어져서 기록의 의미는 크게 없다.) 등의 말들을 치료한 전설적인 장제사다.
3.2. 번식마 생활[편집]
이쿠노 딕터스의 자마 성적은 좋지 않다. 현역 때 뛰어났던 암말은 자식이 뛰어난 경우가 없다는 옛 속설의 전형적인 사례.[14]
은퇴 후의 재밌는 일화는 첫번째 교배상대였던 메지로 맥퀸과의 이야기. 93년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후 인터뷰에서 기수였던 타케 유타카가 "맥퀸이 이쿠노에게 신경쓰느라 전혀 진지하게 달리지 않았다."라는 쉽게 말해 진지하게 달리지도 않았지만 우승할 정도로 널널했다는 자뻑 발언을 했는데, 이게 사람들한테는 로맨스로 받아들여졌던 것, 맥퀸과 같이 나온 경기에선 이쿠노 딕터스도 유달리 얌전했다느니 하는 핑크빛 소문이 관계자들 사이에도 퍼질 정도로 달아올랐는데[15] 결국 94년 이쿠노 딕터스와 메지로 맥퀸이 종마 생활을 시작하는 첫해에 맺어지게 되니 팬들이 열광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쉽게도 둘 사이의 자식은 별 성적을 내지 못한다. 그런데 꼭 이쿠노 딕터스의 탓이라 하기도 뭣한 것이 메지로 맥퀸 역시 자마 성적은 현역 경주마 시절 대활약에 비해 영 아니었고, 모부(외조부)로서 오르페브르와 골드 십, 드림 저니를 배출한 것이 다이다.
자마 중 야와타 버그는 한국으로 수출되었다.
이렇듯이 자마 성적은 썩 좋지 못했으나 모마로서 모성애가 무척 강해서 5번째 자마를 출산했을 당시 망아지가 젖을 좀 더 수월하게 먹을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눕는 등 배려했다거나 어느 정도 자마가 성장하자 방임하는 듯 했지만 인간에게 자마가 다가가자 혹여 데려갈까봐 몸으로 감싸는 등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고 한다.
4. 여담[편집]
- 1992년 G2 한신 오사카배 당시 아나운서였던 스기모토에게 본의 아닌 비하를 당한 말 중 한 마리이기도 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 이쿠노 딕터스가 우승한 경기의 2착이나 3착은 인기 순위가 낮았던 말, 그중에서도 숫말들이 많아서 이쿠노의 페로몬에 홀린 숫말들이 더 열심히 달린 게 아니냐는 농담이 있다.
5. 경주 성적[편집]
[1] 당시 기준 역대 암말 통산 상금 1위.[2] 현 JRA상 최우수 4세 이상 암말[3] 야스다 기념의 1착은 야스다 기념 연패 기록을 가진 야마닌 제퍼, 타카라즈카 기념 1착은 다름아닌 메지로 맥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4] 7착 이하로 들어오면 상금이 전혀 없기 때문. 이 정도의 상금을 타려면 계속 전광판(5착) 이내로 들어와야 한다.[5] 21세기 기준으로 혹사라고 불리는 출주 스케줄도 저 당시에는 평범한 스케줄 취급을 받던 시대에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면 그 당시 기준으로도 말도 안 되는 혹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6] 참고로 토카이 트릭이란 말이 무려 11살 시즌까지 출주하며 63전을 뛰었다. 이쿠노 딕터스는 그 반 정도의 기간동안 비슷한 숫자의 출주수를 보여준 것.[7] 물론 위에는 위가 있다고, 이쿠노 딕터스 보다 더 한 말도 있다. 대표적으로 6세 시즌까지 무려 76전을 뛰어 한동안 중앙경마 최다 출주기록과 달리는 노동자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던 이나볼레스(1969년 출생), 8시즌 동안 99전을 뛰며 2대째 달리는 노동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야마닌 발리마라(1973년 출생), 7년간 127전으로 중앙경마 최다 출주기록을 가지고 있는 하트랜드 히류 등 중앙경마인데도 말도 안되는 출주기록을 가지고 있는 말들은 의외로 있다.[8] 마찬가지로 사료값을 벌기 위해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진 하루 우라라는 경기의 대부분이 1000~1300m 내외인 단거리만 달렸다.[9] 통산 9승을 월별로 나눠보면 3월 1승, 5월 2승, 6월 2승, 7월 1승, 8월 2승, 9월 1승이 된다.[10] 사실 썰 자체의 신빙성도 낮은 것이, 안락사까지 검토 될 정도로 심각한 굴건염을 한달만에 치료했다는 것도 무리가 있는 얘기인데다, 세리 세크리터리의 예로 확인할 수도 있는것이 1년이 넘게 치료해서 복귀했지만, 중앙에서 데뷔했던 말이 지방경마에서 그것도 가장 상금이 낮은 급의 경기에서만 뛰게 된 것을 보면 치료를 해도 경주력 저하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11] 1993년 브리더스컵 클래식 우승마. 프랑스 조교마로서는 유일하게 BC클래식을 우승했다.[12] 1999년 이스파앙상에서 엘 콘도르 파사를 꺾은 말이다.[13] 미국 혈통의 말. "미나미 칸토의 선데이 사일런스"라고 일컫어졌다.[14] 암말이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숫자는 10마리 내외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의 세대에서 G1 우승마를 낳은 다이나 칼-에어 그루브가 명마로 칭송받는 이유이기도 하다.[15] 다른 이야기로, 맥퀸은 이쿠노를 짝사랑했지만 이쿠노는 토카이 테이오를 좋아했다라는 증언도 있다.사실은 해변에서 데이트도 해본 사이. 실제로 맥퀸과 이쿠노의 교배는 잘 풀리지 않았는데, 이쿠노가 발정하지 않아 발정제를 써서 겨우 교배했다고 한다.[레코드] A B C [16] 원래 12위로 들어왔으나 5번째로 들어온 브랜드 피트의 실격으로 순위가 한 단계 올라갔다.[17] 1995년을 마지막으로 폐지. [18] 리얼 선 매로와 동착이었다.[19] 나이스 네이처의 반형제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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